필리핀 빈민촌 봉제센터 이철용 목사신동민 간사(아름다운 커피 본부장) 이철용 목사는 필리핀의 극빈지역을 선교하는 선교사다. 하지만 그의 선교는 일반 전통적인 선교사역과 좀 다르다. 그는 사회적 기업가다. 봉제센터, 베이커리 등의 비즈니스를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여 자립기반을 마련한다. 그래서 센터의 이름도 ‘자립선교센터’다. 선교학적 관점으로 보거나 국제개발학적인 관점으로 볼 때도 그의 선교 사례는 의미 있는 사역이다. 아직 한국 교회는 선교사가 사업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선교헌금은 교회를 짓고 학교를 짓는 데 써야지 비즈니스를 하는 데 쓴다는 것은 아직 낯설고, 목회자가 사역은 하지 않고 돈을 번다는 부정적인 인식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바울의 텐트메이킹을 뛰어넘은 선한 비즈니스 사역을 하고 있다. 그는 비즈니스를 하여 돈을 벌어 선교사역을 후원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자체가 선교인 선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이런 사업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에는 교회의 후원뿐만 아니라 함께일하는재단 및 코이카와 같은 민과 관의 도움이 있었다. 그만큼 그의 사역은 국제개발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사례다. 국제개발 분야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질문은 사업이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요자 관점이 아닌 공급자 관점에서 사업을 진행하여 결국 아무 쓸모없는 시설과 건물만 짓는다던지, NGO를 통해 재원이 지원될 때만 잠깐 수혜를 받다가 NGO가 지역을 떠나게 되면 다시 빈곤해지는 사례가 많았다. 구제사역은 자칫 의존도를 높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인데, 그는 사회적 기업을 통해서 훌륭한 모델들을 만들고 있다. 선교사로의 부르심 이철용 목사는 극빈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판자촌에서 살던 어린 시절, 홀어머니가 아들을 외국에 입양 보내야 할지를 수차례 고민할 정도로 끼니를 이어가기도 어려운 힘든 시절이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교회의 전도사님이 미국의 한 결연단체를 연결해 주었으며 이를 통해 학업을 지속할 수 있었다. 결국 그는 신학교를 입학하여 목회자가 되었고 일반 교회 부교역자로 7년간 사역을 하다 외국인근로자, 장애인과 관련된 사역을 했다. 그가 필리핀에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쉬기 위해서였다. 그가 장애인의 인권을 위해서 사역하던 시절, 쉬지 않고 일하다 탈진하게 되었던 것이다. 친구가 사역하고 있다는 필리핀을 휴가차 방문을 했다가 필리핀의 빈민촌을 접하면서 그는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다. 자신도 못 먹고 못 입던 시절을 겪었던 터라 빈민촌의 가난한 필리핀의 아이들을 보자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렸을 때 받았던 선한 도우심을 갚으라는 음성이 마음속에 들려왔다. 사회적 기업 시작 처음에는 한국에서 장애인 매체를 발행했던 경험을 살려 필리핀 약자 층을 위한 무료 신문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읽는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었다. 필리핀의 낮은 인터넷 보급률이 문제였다. 그러다가 필리핀 현지 구호단체 친구들과 함께 타워빌이라는 지역을 만나게 되었다. 자연재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강제 이주되어 살고 있는 지역이었다. 마닐라에서 4~5시간이 걸리는 곳에 위치한 이주지역이기 때문에 일자리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특별히 이 지역에는 미혼모 등 여성 가장이 넘쳐났는데, 이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난 가장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철용 목사는 여성 가장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타워빌에 ‘캠프 봉제센터’가 들어섰다. 그는 기업을 사회적 경제 방식으로 운영한다. 1인 1표의 민주적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협동조합의 형태다. 노동자의 숫자는 초창기 20여 명에서 5년이 흐른 2016년 현재 70여 명으로 늘었다. 이들 대다수는 노동자인 동시에 운영에 참여하는 조합원이다. 이들은 ‘익팅’이라는 협동조합 형태의 조직을 만들어 봉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익팅’은 필리핀어로 ‘불을 붙인다’는 뜻이다). 조합원들 스스로 직원을 뽑고, 매출 목표를 정하고, 생산량을 정하고 마케팅을 한다. 처음에는 80%가 한국 시장에 의존했으나 이제는 의존 비율을 20%까지 끌어내렸다. 이렇게 결정하고 진행한 것도 조합원들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한국의 공정무역 시장만으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느낀 그들이 스스로 필리핀 내수시장을 찾은 것이다. 유니폼 시장을 공략하여 시장을 개척했다. 다른 지역 봉제공장보다 임금이 30% 가량 적은 200~250페소(약 5150~6450원) 수준이다. 찰리 레예스 씨(43)는 “높은 임금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난생처음 내 기술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지난해 입사한 그는 마닐라 쓰레기촌 출신이다. 술에 찌들어 살던 중 익팅을 알게 돼 4개월간 봉제 훈련을 받고 국가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여성들은 주어진 일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노동자로 성장했다. 인근 학교 교복을 구한 뒤에 더 나은 샘플을 만들어 교장실을 직접 찾아가 계약을 성사시켰다. 맥도널드의 하청공장에 앞치마 등을 납품하다가 이윤이 거의 남지 않자 마닐라에 있는 맥도널드 필리핀 지사에 무작정 찾아갔다. 맥도널드를 설득해 재하청이 아닌, 직접 하청으로 앞치마를 납품하는 계약을 따냈다. 이들은 스스로 인센티브를 결정했다. 지난해 여름, 초과 이익이 발생하자 인센티브를 어떻게 나눌지 기준을 결정했다. 생산량, 출석률 등 네 가지 기준으로 나누어 점수화하고 인센티브를 나눴다. 봉제센터의 노동자들은 월급에서 일부를 떼어 지역의 굶는 아이들에게 무료급식을 시작했다. 금요일까지 일을 하고 토요일에는 밥을 주러 봉제센터로 나갔다. 자립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인가 그리고 주민들이 자립의 의지가 있는가의 문제다. ‘익팅’의 사역은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사단법인 ‘캠프’ 여성 가장들의 일자리를 마련하는 사업이 점차 커지고 지역의 다른 필요가 늘어나면서 사업의 범위가 넓어졌다. 여성들이 일을 할 때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유치원, 의료서비스, 베이커리, 사회적 기업 등 모든 사업을 ‘캠프’라는 NGO형태의 법인으로 진행하고 있다. 보통의 NGO는 모금을 위해 현지보다는 한국에 법인을 세우고 사무국을 운영하면서 현지의 사업을 기획한다. 그런데 캠프는 달랐다. 필리핀 현지에 법인을 세우고, 사업을 기획하기 전에 먼저 현지의 필요를 철처하게 조사하여 공급자가 이끌어가는 형태가 아닌 주민들 스스로 운영하는 형태로 만들었다. 그래서 효과가 컸다.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에는 대통령 산하 주택개발청 설립 40주년 기념으로 아키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BEST PARTNER상을 수상하였다.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 BAM(Business As Mission)은 비즈니스를 도구로 이용하는 선교를 넘어서서 비즈니스 그 자체를 목적과 선교로 하는 패러다임이다. 자립은 결국 일자리다.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일을 통해서 자신이 계발되고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것이 성경적 노동이며 소명이다. 총체적으로 변화를 일으키고 스스로 자립하도록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을 통한 선교는 구제사역의 한계를 보완하는 훌륭한 방법이다.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 11길 19 TEL : 02-3147-0309 대표자 : 이철용 http://www.icamp.as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