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기사입력: 2009/07/10 13:48)
서울 봉천동 봉천역 4번 출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앞에 서니 은은한 커피 향기가 마음을 편하게 한다. 건물 1층에 자리한 커피전문점 ‘까페모어’때문이다. 까페모어에 들어서니 바리스타들(커피를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사람)이 반갑게 손님을 맞이한다.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기까지 여느 까페와 다름없다. 다만 마신 커피가 우리나라 최초의 1급 여성 시각장애인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라는 것, 께페모어의 바리스타 4명이 모두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이 다를 뿐이다. 시각장애인에게 바리스타라는 새로운 직업을 제시해준 까페모어의 향기가 그래서 더 좋았나보다.
물질적 자립을 이루면 스스로 서비스 누릴 수 있어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이하 복지관)의 시작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각장애인 의사로서 또한 목사로서 활동 중이던 김선태(현 실로암안과병원 병원장) 목사가 1974년 조직한 맹인선교회가 실로암복지관의 모체다. 김선태 목사를 비롯한 맹인선교회 임원진은 1992년 사회복지법인 설립을 추진했고, 1997년 사회복지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회가 설립되었다. 2년 후인 1999년에 복지관이 개관했고 지금까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20만 시각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실로암시각장애인 근로사업장(이하 근로사업장)은 복지관 내에서도 특별히 시각장애인들이 직업을 갖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부서다. 정해궁 국장은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장애인 스스로가 물질적으로 여유를 갖는 것입니다. 당사자가 물질적인 어려움에서 해결되어 스스로 서비스를 찾아 누리면 더 좋은 것이죠.”라며 근로사업장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장애인사역을 시작한 이유를 묻는 물음에는 “일반인 인구의 약 25%가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장애인 중 기독교인들은 5%도 안 돼요. 장애를 가지면 하나님 믿기가 힘들다는 것이죠. 교회가 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안마센터 운영사업, 포장조립사업, 전자도서제작사업, 까페모아 운영사업, 문화예술사업 등 다양한 장애인직업재활사업을 펼치고 있는 근로사업장에서는 ‘시각장애인의 고용 확대를 위한 국제세미나’ 개최, 장애인 인식개선 프로그램, 시각장애인 역량강화 교육 등 사회의 인식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안마센터운영사업이다. 근로사업국에서는 봉천점, 평촌점, 잠실점 3개의 안마센터를 운영하여 60여 명의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에서 지급하는 사회적 일자리 지원금과 센터 수익에 의한 임금을 합친 월급을 받는다. 봉천점은 하루 평균 5,60명의 고객이 찾고 있어 안정되어 가고 개점한 지 얼마 안 된 평촌점과 잠실점도 이용자들이 늘고 있다고 정해궁 국장은 설명했다.
안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 바꾸도록 노력 중
근로사업장에서 안마 사업을 중요시하는 이유가 있다. 안마가 시각장애인들의 감각적인 면에 부합하는 적합 직종이기 때문이다. 현재 안마는 시각장애인만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이 때문에 종종 위헌판결 소송이 제기되고 있으나 현행법으로는 시각장애인들만 전문안마사가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은 초·중·고교를 거치면서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중도실명자인 경우에도 수련원이나 안마사협회를 통해 자격증을 취득한다. 그런데 전문안마사로 스스로 활동하기에 제약이 많다. 시설을 갖추거나 제대로 된 경영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안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역시 시각장애인들에게는 큰 어려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마시술소의 퇴폐, 유흥과 연결지어 생각하기 때문에 시각장애인 안마업이 크게 위축되었다. 생계가 어려워진 시각장애인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정부에서는 그 대안으로 그린안마센터라는 시각장애인 안마센터 설립을 지원했는데 운영 미숙과 홍보 부족 등으로 10개 중 9개가 1년 이상을 유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실로암근로사업장의 중요한 할 일 중 하나가 안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건전한 안마센터를 운영하는 것이다. 근육이 결리고 통증이 생기면 전문안마사에게 안마 받으러 오는 동네 의원 같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 것. 지역사회에 건강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시각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일터로 안마센터를 만들어 가는 것. 그렇게 지점을 늘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다보면 안마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시각장애인 스스로가 창업하여 경제적 자립을 이루게 하는 것이 실로암근로사업장의 목표이자 계획이다.
까페모어를 열어 시각장애인들의 욕구를 들어주고 직업선택의 폭을 넓혀주었고, 안마센터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고 있는 실로암 근로사업장. 그 노력들은 분명 하나님의 일이라는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