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기사입력: 2009/09/21 10:21)
부천시 오정구, 여러 제조업 공장들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는 공단 한쪽에 유독 눈에 띄는 한 공장이 있다. 잔디밭의 풋풋함을 닮은 녹색 외관과 독특한 손글씨 간판이 돋보이는 곳, 점심을 먹고 잠시 쉼을 청하러 공장 앞 잔디밭에 삼삼오오모여 있는 근로자들 역시 산뜻한 녹색 티셔츠 차림이다. 반갑게도 삭막한 공단에서 찾아낸 이 예쁜 공장이 바로 찾아가기로 한 (주)고마운손이었다.
정부와 대기업, 비영리재단이 함께 만든 고마운손
열매나눔재단(대표이사 김동호)의 세 번째 공장 ‘고마운손’은 설립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은 신생회사이자 정부, 대기업, 비영리기관이 공동설립한 사회공헌기업이다. 사회적기업이 주로 비영리기관들에 의해 설립·운영된다면 사회공헌기업은 정부와 대기업이 함께 참여해 만드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기업이다. 고마운손의 경우 보건복지가족부와 SK에너지가 자금을 지원하고 열매나눔재단이 설립했으며 패션브랜드 (주)쌈지가 발주 및 기술 지원을 하고 있다.
고마운손의 오형민 대표이사는 열매나눔재단과의 인연으로 서울시 중증장애인지원센터를 운영하면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위해서는 대기업과 연관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사회적기업을 세우더라도 판로가 없으면 운영이 어렵기 때문에 확실한 공급처를 마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핸드백을 납품하면서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수익금의 50%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패션브랜드 쌈지를 설득했다. 그 뜻을 좋게 본 쌈지측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보건복지가족부와 SK에너지의 지원을 받아 친환경가방회사 고마운손이 탄생한 것. 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열매나눔재단은 2호공장 설립 몇 개월만에 3호 공장을 세우게 되었다.
고마운손의 규모는 핸드백 제조업체 중 국내 최대다. 450평 건물도 그렇지만 근무 조건과 근무 환경도 매우 좋은 편이다. 사업 기획에만 관여하려 했던 오 대표이사는 대표로 있던 경영컨설팅 회사도 그만두고 이 일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이 일을 통해 내면의 변화를 겪고 있다고 한다.
“하나님을 믿긴 했지만 교회에 매우 비판적이었고, 처음에는 사업의 디딤돌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으로 재단과 인연을 맺기도 했었어요. 지금은 저를 믿고 대표로 세워준 이곳에서 함께 기도하며 천천히 신앙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나도 사장이 될 수 있다는 비전
고마운손을 통해 안정적 직업을 찾은 이들은 모두 사회의 취약계층이다. 총 43명의 근로자 중 10명이 탈북자, 9명이 고령자, 4명이 장애인이고 그 외에도 모자가정, 차상위 계층 등 일자리를 찾기 힘든 이들이다. 이에 대해 오 대표는 “취약계층과 함께 일한다는 것이 희망이기도 했지만 부담이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핸드백의 공정이 매우 복잡하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일이라 장애인과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고마운손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마운손은 기술자 만드는 일에 가장 힘을 쏟았다. 실력 있는 기술자들을 섭외하고 직원들을 중간기술자로 만드는 데 6개월이 걸렸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지난달 쇼핑백 1,000개를 납품하면서 납기일도 정확하고 품질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쌈지 측에서도 보다 많은 주문을 하고 밀어주고 있다고.
섭외해온 기술자나 취약계층 근로자들 중 퇴사자가 거의 없다는 것도 고마운손의 자랑이다. 고마운손의 모든 직원은 예쁜 명함과 명확한 직책이 있는데 재봉은 Sewing Designer, 재단은 Cutting Designer 등의 근사한 호칭이 붙었다. 일에 대한 자부심과 소속감을 주기 위한 소소한 노력들이 고마운손을 즐거운 일터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공장을 잔디공원 옆으로 세운 것도, 공장 곳곳에 다양한 그림을 걸어놓은 것도, 언제든 불만을 써 낼 수 있는 편지함 ‘고마운 소리’를 만들고, 옥상에서 식물을 키우는 것도 모두 같은 이유다. 오 대표는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분위기가 모두 따뜻하고, 탈북자들도 잘 적응한다.”며 뿌듯해했다.
고마운손의 목표는 지금의 근로자 중에서 사장이 세워지는 것이다. 오 대표는 “자신은 초기 관리를 맡은 사람일 뿐, 3년 안에 새로운 사장을 세워서 물려주고 떠날 것”을 종종 이야기 한다고. 지금은 취약계층이지만 실력을 쌓아 기술자가 되고, 관리자가 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도록 격려하고 있다. 1기 직원 중에는 디자인에 재능과 관심이 많아 생산직에서 디자인직으로 옮겨진 경우도 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 바로 고마운손과 열매나눔재단의 비전이기 때문이다.
오 대표가 기대하는 또 하나가 있다. 자발적으로 신우회가 생겨나는 것이다. “재단이나 김동호 목사님이 제게 강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저도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곧 신우회가 생길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착한 기업이 있어서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