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기사입력: 2009/10/08 11:29)
◇ 재능을 기부한 기부자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는 패브릭 제품
지난 5월부터 종로3가 서울극장 한켠에 화사하고 아기자기한 가게가 들어섰다. 깨끗한 빨간 벽이 눈길을 끄는 이곳엔 의류, 서적, 가방, 커피 등 다양한 물품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사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는 좋은 물건들, 그런데 가격도 저렴하다. 누군가의 기증으로 들어온 재활용품이기 때문이다. 한쪽 벽면에는 커피, 된장, 친환경비누 등 ‘착한 상품’들이 보인다. 공정무역을 통해 들어온 상품과 친환경상품이다. 이를 구매하면 생산자에게 도움이 되고 환경을 지킬 수 있다.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이웃과 지구에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이곳, ‘행복한나눔’이라 부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물건 사면서 기부에 동참하세요
행복한나눔은 기증받은 물품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그 수익금으로 이웃을 섬기는 나눔가게다. 1999년 (사)기아대책의 ‘생명창고’로 문을 열어 올해로 설립 10주년이 되었다. 이곳에선 재활용을 통해 기부와 나눔이 이루어진다. 기증하는 것만이 아니라 물품을 구입하는 것 역시 기부에 참여하는 일이다.
시작 당시 행복한나눔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국내외 어려운 이들을 돕는 기아대책의 모금 수단, 그리고 폐쇄적 성향이 강한 교회가 문턱을 낮추고 지역사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운동이다. 지금도 교회 내 매장이 대다수로 수익의 50%는 교회의 구호사업이나 구제사역으로 사용한다. 때문에 일시적인 지원이 아니라 지속적인 지원이 가능한 모델이다.
2008년 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행복한나눔은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독자적인 브랜드 ReD도 만들었고, 생산자와 직접 교류하는 공정무역도 시작했다.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으면서 50여 명의 사회적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주로 여성들이고 그중 20~25%는 취약계층이다.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수익이 건전하게 사용되는 일에도 관심이 높다. 수익금은 기아대책의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사회적 목적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전 세계 구호사업에 사용된다.
행복한 나눔 53호 서울극장점은 지난 5월에 문을 열었다. 서울극장의 고은아 대표가 공간을 기부하고 디자이너들이 재능을 기부해 예쁜 가게가 탄생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극장점의 오픈은 대부분의 매장이 교회 안에 있었던 행복한나눔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문화를 즐기러 온 사람들에게 기부문화를 소개하고, 참여하도록 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조병준 기아대책 매장전략팀장은 “새로 문 연 서울극장점의 주 고객이 20∼30대인 점을 감안해 재활용 상품에 국한하지 않고 유명인사들의 기증품, 공정무역상품, 친환경상품, 리폼상품 등 크게 4가지 기획코너를 마련해 상품을 판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진경 서울극장점 매니저는 “처음에는 호기심에 들어와 본 사람들에게 재활용상품과 기부문화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이제는 가게 문 앞에 기증품들을 놓고 가시는 분들, 손님으로 와서 자원봉사자가 되신 분들이 늘어났다.”며 “재활용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는 것을 보면 너무 기쁘다.”고 한다. 이곳의 수익은 필리핀 쓰레기 매립지 빈민지역에 있는 해피홈스쿨을 돕는 데 사용된다.
◇ 김진경 매니저―환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김진경 매니저가 공정무역 커피 <치아파스의 맛있는 향기>를 들고 있다
기독교 단체들이 진정성을 보여줄 기회
최근 사회적기업이 굉장한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나서서 사회적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데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공정무역에는 대기업들도 뛰어들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 대해 조병준 팀장은 “마케팅전략으로 전락할까 우려가 된다.”면서도 “기독교 단체들이 진정성을 보여주는 좋은 모델 역할을 할 기회”라고 평가했다.
행복한나눔의 과제도 남아 있다. 우선 노동부 지원이 끝나기 전에 재정 자립을 해야 한다. 전국 53개의 매장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고 자료를 제공해 가면서 자립을 이뤄나갈 계획이다. 입지 좋은 곳에 매장을 많이 세우고도 싶단다. 지금 대대수의 매장이 교회 안에 있는데 교회 밖 매장을 통해 지역 주민의 접근성과 인지도를 높이고자 한다. 이것이 선교적으로도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기아대책의 3대 가치가 섬김, 나눔, 생명이다. 이는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익숙하게 들어왔을 단어다. 실천하기가 막연하다고? 행복한나눔 매장을 방문해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입하라. 아니면 내게 불필요한 물건들을 잘 정리해 기증하라. 일상의 작은 행위가 이웃을 돕고 선교지로 사람을 보내어 하나님 나라의 확장까지 이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