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기사입력: 2009/11/20 14:11)
신기한 나라에 온 것 같은 이층집이었다. 빨간 우체통 옆 낮은 문을 밀고 들어섰다. 작은 마당을 지나 열 개쯤 되는 계단을 오르자 현관문이다. 현관문을 잡아당겨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다시 미닫이문이다. 조용히 미닫이문을 열었다. 갑자기 환하고 밝고 아늑한 공간이 펼쳐진 탓에 눈이 부셨다. 한국 YMCA 연맹에서 운영하는 <서울 아가야>와의 첫 만남은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은 호기심으로 시작되었다.
집 내부 구조 역시 흔히 접하던 아파트 식 평면 공간이 아니다. 지하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1층과 2층 사이 중간층에 위치한 화장실, 다락방, 널찍한 베란다 등 입체적 구조로 이뤄져 있다. 그림과 화분, 책과 장난감 등 곳곳에 놓인 사물들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파트 같은 평면 공간보다 복층으로 된 다양한 구조에서 아이들의 상상력은 증대돼요. 실내에서 바라보는 마당, 계단을 오르내리며 느끼는 공간감 등이 아이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지요.”라는 이현주 센터장의 말을 들으니 숨을 곳도, 구경할 곳도 많은 이 공간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든다.
보육의 빈틈을 채운다
YMCA에서 지원, 운영하고 있는 <아가야>는 2006년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교육의 확장을 위한 프로젝트 사업으로 시작했다. 일자리 문제가 사회문제로 심각하게 대두되기 시작할 때 YMCA는 ‘교육’과 ‘여성일자리 창출’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시간제 열린육아센터 <아가야>를 기획했다. 취업 취약 계층인 여성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아이를 키워 본 경험이 있는 원숙한 부모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제공하면서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사업이라는 판단이었다.
여기에 시간제 보육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요구가 더해졌다. 국내 보육의 형태는 보통 시립 어린이집이나 민간 어린이집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시설은 종일제 보육시설로 한번 들어가게 되면 1년을 지속적으로 보내는 곳이다. 그러나 급한 일이 생기거나 자기계발을 위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간제 보육의 수요가 점점 늘어나면서 일시적으로 지역에서 자유롭게 아이를 돌봐주는 열린 탁아 공간이 필요해졌다.
보육의 빈틈(?)을 채워주며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착한 이층집 서울아가야에 오는 아이들은 3세부터 9세까지 다양하다. 하루에 한 시간만 머물다 가는 아이부터 종일반처럼 있다 가는 아이, 초등학교를 마친 후 방과 후 학교처럼 머물다가는 아이 등 이용 시간과 방법은 제각각이다. 유아, 유치부 아이들의 생활은 ‘봄뜰’이라 부르는데 노래, 요가, 다도, 손유희, 마당놀이, 전래놀이, 도서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아가야에 머무는 시간은 정성껏 돌봐주는 선생님들과 함께 장난치는 친구들 때문에 늘 행복하다.
‘마당’은 학교에서 일찍 끝난 초등학교 1,2학년 친구들의 방과 후 학교다. 학습활동보다는 자연에서 놀고 생활의 자치를 배우며 예술을 즐거워할 줄 아는 아이들로 돌보고 있다. 다도, 도예, 직조, 말과 글, 요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 속에서 아이들은 자유와 사랑을 경험한다. 교사들 역시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모두 너무 정성껏, 아이들을 사랑하고 돌보고 아낀다. 유치부부터 50대까지 전 세대가 함께 모여 있는 대가족 속에서 아이들은 사랑을 배운다. 또 자유롭게 표현하고 표출하면서 풍성해진다.
좋은 일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곳
가정육아교사 양성 및 파견 서비스 역시 아가야의 중요한 사업이다. 가정육아교사라는 명칭을 만들어 위상을 높이고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다. 100시간 이상의 이론 및 현장실습을 수료한 가정육아교사들을 필요한 가정으로 보내는 네트워크가 진행 중이다. 교육대상은 20~50대 고졸 이상 여성 중 베이비시터가 되길 희망하는 이들이다. 현재 소속되어 있는 교사들은 약 30여 명. YMCA의 대표라는 생각을 가지고 의지와 자긍심으로 일한다. 이러한 입소문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아가야에서 파견한 선생님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확장보다는 좋은 일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아 열심히 교육하고 파견하고 있다.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을 위해 지난 5월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지만 2년이라는 한시적 지원기간 내에 자립해야 한다는 숙제가 던져졌다. 이현주 센터장은 “공동의 자본, 공공의 자본을 지원받고 있기 때문에 책임이 더 크다.”며 보육사업의 일환으로 시장변화에 맞춰 계속 연구하고 갈 길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돌봄의 사각지대 해소에 앞장서고 여성이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좋은 보육을 위해 애쓰고 있는 아가야에서 많은 아이들이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